다리를 놓는 사람: 이진영 프로젝트 <다리를 건너는 시간> 평론
송유빈 (기획)
1장. 프로젝트의 시작
작년 겨울이었던 것 같다. 이진영 작가는 다리에 대한 작업을 할 거라고 했다. 당시는 2024년 연초로 작가의 첫 개인전 <씨앗 심기>가 마무리된 직후였다. <씨앗 심기>는 코로나19 팬데믹의 여파로 전 국민이 조금씩 다른 방식의 일상을 살았던, 멀지 않은 과거 2020년부터 2022년 동안 작가가 일상에서 만난 사람과 사소한 풍경들을 사진과 영상, 글로 느슨하게 엮어낸 전시였다. 긴 호흡으로 모아온 과거 일상의 파편들을 작은 씨앗처럼 바라보며 그 속에 숨어있을 의미들을 곱씹으려 하는, 작가의 오래된 작업 방식을 전면으로 드러내는 전시였다.
“그렇다면 다리로는 뭘 하고 싶은데요?”라고 묻자, 작가는 설명을 시작했다. 그는 작업의 첫 번째 계기로 성남의 탄천 다리의 붕괴 사고를 이야기했다. 2023년 4월 5일 작가의 집에서 멀지 않은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의 교량이 40m가량 붕괴하면서 시민 1명이 사망했고, 이후 정부는 해당 교량과 유사한 구조의 다리 1801개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그렇게 작가를 둘러싼 일상의 풍경이 달라졌다. 탄천의 교량들이 대대적인 조사와 점검에 들어가면서 보도블록이 헤집어지고 하수도관과 철근이 드러났으며, 출입을 통제하는 간판이 교량 초입에 세워졌다. 집과 학교로, 지하철역으로 가기 위해 일상적으로 지나쳤던 길목이 이제는 불안을 감수하고 건너거나 진입도 할 수 없는 위험구역이 된 것이다. 작가는 이에 따라 다리라는 시설물에 걱정 섞인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한편 시민들은 개의치 않고 그 다리를 건너다녔다. 사고 난 다리도 마찬가지였다. 무너진 다리의 파편이 대강 널어 둔 빨래처럼 한쪽 팔을 늘어뜨리고 있어도 그 틈바구니로 통행했다. 탄천 강변의 다리 밑에서 맨손 체조를 하고, 자전거를 타고, 강아지와 산책했다. 탄천의 물고기는 여전히 춤을 추고 비둘기는 떼를 지어 날아다녔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던 작가는 어느새 다리 주변의 일상을 관찰하고, 다리의 의미를 고찰하게 되었다. 다리의 종류와 모양뿐 아니라 다리라는 공간의 역할. 이것과 저것을 잇는다는 것. 또는 다리가 아니지만 다리가 되어주는 존재들은 무엇이 있을지 등을 말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다리는 첫째로 “물을 건너거나 또는 한편의 높은 곳에서 다른 편의 높은 곳으로 건너다닐 수 있도록 만든 시설물”이며, 둘째로 “둘 사이의 관계를 이어주는 사람이나 사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위 두 의미를 모두 탐색하게 된 것이다.
이에 작가는 다리라는 키워드를 기반으로 자신이 살았던 공간을 돌아보고 사람들을 연결했던 경험을 돌아보았으며, 이를 토대로 작업을 진행하고, 주민들에게 전달하기로 마음먹는다. 저번 작업에서는 씨앗을 뿌리고 발아를 기다렸던 작가가 이번 작업에서는 직접 다리가 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 시작 당시 기획자로서는 작가가 무엇을 하고 어떤 결과물을 만들지 예측할 수 없었다. 그러나 자전적 삶을 다뤄온 작가가 로컬 작가의 관점을 갖고 자기의 지역, 동네를 향한 관심을 표현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이 프로젝트는 의미도 재미도 있을 거란 믿음이 있었다. 몇 달 뒤 그의 이야기는 성남문화재단 지원사업인 <다리를 건너는 시간> 프로젝트가 되었고 본격적인 제작 과정에 착수했다.
작년 겨울이었던 것 같다. 이진영 작가는 다리에 대한 작업을 할 거라고 했다. 당시는 2024년 연초로 작가의 첫 개인전 <씨앗 심기>가 마무리된 직후였다. <씨앗 심기>는 코로나19 팬데믹의 여파로 전 국민이 조금씩 다른 방식의 일상을 살았던, 멀지 않은 과거 2020년부터 2022년 동안 작가가 일상에서 만난 사람과 사소한 풍경들을 사진과 영상, 글로 느슨하게 엮어낸 전시였다. 긴 호흡으로 모아온 과거 일상의 파편들을 작은 씨앗처럼 바라보며 그 속에 숨어있을 의미들을 곱씹으려 하는, 작가의 오래된 작업 방식을 전면으로 드러내는 전시였다.
“그렇다면 다리로는 뭘 하고 싶은데요?”라고 묻자, 작가는 설명을 시작했다. 그는 작업의 첫 번째 계기로 성남의 탄천 다리의 붕괴 사고를 이야기했다. 2023년 4월 5일 작가의 집에서 멀지 않은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의 교량이 40m가량 붕괴하면서 시민 1명이 사망했고, 이후 정부는 해당 교량과 유사한 구조의 다리 1801개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그렇게 작가를 둘러싼 일상의 풍경이 달라졌다. 탄천의 교량들이 대대적인 조사와 점검에 들어가면서 보도블록이 헤집어지고 하수도관과 철근이 드러났으며, 출입을 통제하는 간판이 교량 초입에 세워졌다. 집과 학교로, 지하철역으로 가기 위해 일상적으로 지나쳤던 길목이 이제는 불안을 감수하고 건너거나 진입도 할 수 없는 위험구역이 된 것이다. 작가는 이에 따라 다리라는 시설물에 걱정 섞인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한편 시민들은 개의치 않고 그 다리를 건너다녔다. 사고 난 다리도 마찬가지였다. 무너진 다리의 파편이 대강 널어 둔 빨래처럼 한쪽 팔을 늘어뜨리고 있어도 그 틈바구니로 통행했다. 탄천 강변의 다리 밑에서 맨손 체조를 하고, 자전거를 타고, 강아지와 산책했다. 탄천의 물고기는 여전히 춤을 추고 비둘기는 떼를 지어 날아다녔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던 작가는 어느새 다리 주변의 일상을 관찰하고, 다리의 의미를 고찰하게 되었다. 다리의 종류와 모양뿐 아니라 다리라는 공간의 역할. 이것과 저것을 잇는다는 것. 또는 다리가 아니지만 다리가 되어주는 존재들은 무엇이 있을지 등을 말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다리는 첫째로 “물을 건너거나 또는 한편의 높은 곳에서 다른 편의 높은 곳으로 건너다닐 수 있도록 만든 시설물”이며, 둘째로 “둘 사이의 관계를 이어주는 사람이나 사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위 두 의미를 모두 탐색하게 된 것이다.
이에 작가는 다리라는 키워드를 기반으로 자신이 살았던 공간을 돌아보고 사람들을 연결했던 경험을 돌아보았으며, 이를 토대로 작업을 진행하고, 주민들에게 전달하기로 마음먹는다. 저번 작업에서는 씨앗을 뿌리고 발아를 기다렸던 작가가 이번 작업에서는 직접 다리가 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 시작 당시 기획자로서는 작가가 무엇을 하고 어떤 결과물을 만들지 예측할 수 없었다. 그러나 자전적 삶을 다뤄온 작가가 로컬 작가의 관점을 갖고 자기의 지역, 동네를 향한 관심을 표현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이 프로젝트는 의미도 재미도 있을 거란 믿음이 있었다. 몇 달 뒤 그의 이야기는 성남문화재단 지원사업인 <다리를 건너는 시간> 프로젝트가 되었고 본격적인 제작 과정에 착수했다.
2장. 프로젝트 구성 소개
작업 과정을 설명하기에 앞서 프로젝트를 구성한 개념 키워드와 (기술) 매체를 먼저 설명하겠다. 작가가 주목한 개념 키워드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는 둘 이상의 지점을 잇는 교량(그리고 관련 사건들), 둘째는 다리라는 은유와 상징이다. 다리인 것, 다리같은 것, 다리의 역할. 이 축들을 오가며 작가는 살을 붙여나갔다. 작업 매체 및 재료는 사진, 영상, 텍스트 및 이미지 기반 자료조사 결과물이었다. 작업물은 프로젝트 종료 시점에서 실물 도록 책과 웹사이트 아카이빙 (다리 투데이(dari.today))에서 공개되었다.
작업 과정은 크게 초반(4월~8월)과 후반(9월~12월)으로 나누어진다. 작업 초반의 작가는 다리를 보면 연상되는 단어와 사건들을 자유롭게 떠올리고, 그를 기반으로 리서치와 영상 제작, 사진 작업을 빚어냈다. 기획자는 여러 아이디어를 내놓으며 이 과정을 촉진하는 동시에 그의 아이디어들이 마구잡이로 불어나지만 않도록 보조(하느라고 노력)했다.
이쯤 되면 독자들도 예상했겠지만 수많고 잦은 갑론을박의 시간이 있었다. 하나의 주제를 잡되 자신의 호기심에 따라 사방으로 아이디어를 분출하는 작가와, 하나의 주제에서 주제 의식을 도려내고 그 결론으로 향하는 계획을 세우며 작업물을 한 방향으로 엮는 통제 강박 기획자에게 의견대립은 자연스러운 절차였다. 그러나 매체들을 통일시키는 것이나, ‘다리’의 키워드들을 모두 한가지 궤에 맞추는 것은 애당초 그의 원칙이 아니었다. 이진영은 사진을 기반으로 작품을 만들고, 독립 출판사 파편을 운영하면서 책을 만들고, 평소에는 인터넷의 바다를 떠돌며 자신의 호기심 대상을 탐구하고 그 과정을 영상이나 화면 캡처 뭉치로 기록한다. 거시적 담론이나 역사적인 사건 현장보다는 일상의 순간과 존재들에 관심을 유구히 가져왔으며, 그 관심사들이 눈(혹은 모니터)앞에 나타나면 그가 구사하는 모든 기술과 제작 기법을 자유자재로 동원해서, (부산하고) 끈질기게 쌓아나가는 작가가 이진영이다.
이번 <다리를 건너는 시간> 역시 그렇다. 다리 붕괴 사고를 계기로 시작했지만, 프로젝트의 목표는 부실 공사나 인명 사고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는 것이 아니었다. 어떤 명확한 아젠다나 의견을 외치지도 않았다. 그는 다리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조사하고, cctv로 다리들을 지켜보며 그날 자신이 본 사건들을 기록한다. 유튜브에서 <무지개다리>라는 제목의 곡을 검색해서 반려 동물을 떠나보낸 사람들의 댓글과 그 동물의 이름들을 기록하기도 한다. 다리에서 직접 주워온 물건이나 본인이 다리를 건너다 직접 겪었던 사건들은 물론이다. 이 결과물들은 웹사이트를 통해 실시간으로 반영되거나 사진책에 반영되었다.
작업 과정을 설명하기에 앞서 프로젝트를 구성한 개념 키워드와 (기술) 매체를 먼저 설명하겠다. 작가가 주목한 개념 키워드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는 둘 이상의 지점을 잇는 교량(그리고 관련 사건들), 둘째는 다리라는 은유와 상징이다. 다리인 것, 다리같은 것, 다리의 역할. 이 축들을 오가며 작가는 살을 붙여나갔다. 작업 매체 및 재료는 사진, 영상, 텍스트 및 이미지 기반 자료조사 결과물이었다. 작업물은 프로젝트 종료 시점에서 실물 도록 책과 웹사이트 아카이빙 (다리 투데이(dari.today))에서 공개되었다.
작업 과정은 크게 초반(4월~8월)과 후반(9월~12월)으로 나누어진다. 작업 초반의 작가는 다리를 보면 연상되는 단어와 사건들을 자유롭게 떠올리고, 그를 기반으로 리서치와 영상 제작, 사진 작업을 빚어냈다. 기획자는 여러 아이디어를 내놓으며 이 과정을 촉진하는 동시에 그의 아이디어들이 마구잡이로 불어나지만 않도록 보조(하느라고 노력)했다.
이쯤 되면 독자들도 예상했겠지만 수많고 잦은 갑론을박의 시간이 있었다. 하나의 주제를 잡되 자신의 호기심에 따라 사방으로 아이디어를 분출하는 작가와, 하나의 주제에서 주제 의식을 도려내고 그 결론으로 향하는 계획을 세우며 작업물을 한 방향으로 엮는 통제 강박 기획자에게 의견대립은 자연스러운 절차였다. 그러나 매체들을 통일시키는 것이나, ‘다리’의 키워드들을 모두 한가지 궤에 맞추는 것은 애당초 그의 원칙이 아니었다. 이진영은 사진을 기반으로 작품을 만들고, 독립 출판사 파편을 운영하면서 책을 만들고, 평소에는 인터넷의 바다를 떠돌며 자신의 호기심 대상을 탐구하고 그 과정을 영상이나 화면 캡처 뭉치로 기록한다. 거시적 담론이나 역사적인 사건 현장보다는 일상의 순간과 존재들에 관심을 유구히 가져왔으며, 그 관심사들이 눈(혹은 모니터)앞에 나타나면 그가 구사하는 모든 기술과 제작 기법을 자유자재로 동원해서, (부산하고) 끈질기게 쌓아나가는 작가가 이진영이다.
이번 <다리를 건너는 시간> 역시 그렇다. 다리 붕괴 사고를 계기로 시작했지만, 프로젝트의 목표는 부실 공사나 인명 사고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는 것이 아니었다. 어떤 명확한 아젠다나 의견을 외치지도 않았다. 그는 다리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조사하고, cctv로 다리들을 지켜보며 그날 자신이 본 사건들을 기록한다. 유튜브에서 <무지개다리>라는 제목의 곡을 검색해서 반려 동물을 떠나보낸 사람들의 댓글과 그 동물의 이름들을 기록하기도 한다. 다리에서 직접 주워온 물건이나 본인이 다리를 건너다 직접 겪었던 사건들은 물론이다. 이 결과물들은 웹사이트를 통해 실시간으로 반영되거나 사진책에 반영되었다.

[그림1] 다리의 사건–2 (한강)

[그림2] 곡 <무지개다리>의 유튜브 댓글 속 반려동물 이름들
이 프로젝트의 주요 결과물인 사진도 얘기해 보자. 사실 그의 사진도 다리를 중심을 하고 있으나, 다리와 그 주변의 다양한 대상을 다양한 기법으로 기록했다. 그는 촬영마다 핸드폰과 캠코더, 소형 디지털카메라와 필름 카메라, 그리고 대형카메라를 바리바리 챙겨 다리로 가서 수천 장에 달하는 사진을 담았다. 이를 달리 말하자면, 작가는 빠른 구동과 순간 포착에 능한 소형카메라부터 삼각대를 세우고 한 대상을 긴 시간 지긋하게 바라보아야 하는 대형카메라, 디지털과 필름까지 가용한 모든 사진 영상 기술을 동원함으로써 몇 가지 한정된 대상(다리들)에서도 다양한 색채, 텍스처, 스케일의 이미지를 본떴다.
사진들이 보여주는 것도 다양하다. 이들을 엮어낸 사진책의 시작은 무너진 다리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사진이지만 그 다리의 노상 평화로운 일상 풍경이 나머지 페이지의 대다수를 차지한다. 시멘트를 파헤쳐 드러난 상수도관에 옹기종기 자라난 잡초와 민들레, 가드레일에 붙어있는 안전제일 테이프가 햇볕을 받아 빛나는 모습, 다리 밑 강가에 앉아 먼 곳을 보는 사람들과 그 주변에 상주하는 비둘기들, 다리 기둥 주변에 자욱하게 피어난 꽃들, 다리와 다리 밑 보도를 받쳐주는 구조물과 그 주변에 세워진, 버려진 것 같지만 사실은 쉬고 있는 자전거들.
사진들이 보여주는 것도 다양하다. 이들을 엮어낸 사진책의 시작은 무너진 다리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사진이지만 그 다리의 노상 평화로운 일상 풍경이 나머지 페이지의 대다수를 차지한다. 시멘트를 파헤쳐 드러난 상수도관에 옹기종기 자라난 잡초와 민들레, 가드레일에 붙어있는 안전제일 테이프가 햇볕을 받아 빛나는 모습, 다리 밑 강가에 앉아 먼 곳을 보는 사람들과 그 주변에 상주하는 비둘기들, 다리 기둥 주변에 자욱하게 피어난 꽃들, 다리와 다리 밑 보도를 받쳐주는 구조물과 그 주변에 세워진, 버려진 것 같지만 사실은 쉬고 있는 자전거들.


[그림3] 2024.07~09 소형 필름카메라 작업
[그림4] 대형카메라 촬영 (4x5 inches 포맷)
이 사진들은 무너진 다리가 만든 참상이나, 공사가 중단되고 방치된 교량 수리가 어떤 쓸쓸한 감각을 자아내는가, 시민의 삶이 어떻게 위태로워졌는가, 등에 집중되지 않는다. 일면 그렇게 보일 수는 있어도 그것이 요지는 아니다. 작가는 과거의 사건이 있었던 곳에서 시작했지만 어디까지나 현재의 이야기를 돌아다니고 있다. 즉 다리의 붕괴에서 시작된 작업이지만 이 작업에서 그가 지긋하게 바라보는 대상은 다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일상, 다리 주변의 삶이다. 요컨대 작가는 붕괴 이후 다리의 일상에 새롭게 등장한 요소들 혹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존속되는 요소들을 관찰하고, 그 순간마다 다양한 사진 기술과 촬영 기법을 직감적으로 활용하여 감각적으로 담아냈다. 물론 이 방식에는 몇 가지 우려할 지점이 잠재되어 있다. 명확한 공식이나 대처 방식이 없고, 촬영 일정부터 그 방식까지 즉흥적이었기 때문에 결과물의 일관성이나 짜임새를 보장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러나 적재 적소의 기술 활용, 촬영에 대한 작가의 감각, 그리고 작가의 성실함은 이 걱정을 충분히 상쇄할 만큼 뛰어났다고 믿는다.

[그림5] 다리에서 마주한 얼굴들
작가의 작업 세계관 속에서 <다리를 건너는 시간>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특징을 찾아낼 수 있다. 첫째로 <다리를 건너는 시간> 작업은 기존 작업과 달리 선형적으로 개진된다. 전작인 <씨앗 심기(2023)>, <손 (2022)>, <어슴푸레(2019)>는 작가가 자신의 일상에서 보이는 순간들을 그가 원하는 만큼 일정 기간 기록한 다음, 작업물의 의미를 들여다보고, 한가지 키워드로 느슨하게 엮어냈던 비선형적 작업에 해당한다. 이번 작품은 작업의 시작점이 확실히 존재한다. 현실 속의 대상인 다리와 그에 얽힌 사건을 발단으로 리서치와 사진, 영상, 글 등을 붙여나가며 개념을 확장한다. 작업의 매체는 사진과 영상, 텍스트, 책 등으로 기존과 같다. 일상의 풍경이 주를 이루는 만큼 작품에 보이는 것도 언뜻 비슷할 수 있다. 그러나 작업물이 적립되는 양상은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작가에겐 새로운 작업 방식을 시도한 계기였을 것이다.
둘째로, <다리를 건너는 시간>은 작가의 세계관에 한 축을 더하는 계기였다. 작가는 다리라는 대상을 개념화하고, 자신의 작업 개념과 연결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내었다. 서론에서 언급하였듯 작가는 최근작의 ‘씨앗’은 점으로, ‘다리’는 선으로 삼았다. 그리고 스스로 다리가 되어 선을 잇기 시작했다. 작업 후반기에 진행된 사진책 배부 과정이 그 예시가 될 것이다. 작가는 작업 후반부에 도록을 제작하면서 칠백 부 가량의 배포용 사진책을 따로 제작했다. 그리고 이를 다리로 들고 갔다. 자신이 촬영했던 다리 밑이나 위에 테이블과 간판을 설치하고 다리를 오가는 시민들에게 책을 배부했다. 퇴근길, 산책길의 시민들은 익숙한 다리 위에서 마주한 낯선 이에게 사진책을 선물 받았다. 사진책은 이 문장으로 시작된다. ‘여러분에게 다리는 어떤 존재인가요?’
둘째로, <다리를 건너는 시간>은 작가의 세계관에 한 축을 더하는 계기였다. 작가는 다리라는 대상을 개념화하고, 자신의 작업 개념과 연결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내었다. 서론에서 언급하였듯 작가는 최근작의 ‘씨앗’은 점으로, ‘다리’는 선으로 삼았다. 그리고 스스로 다리가 되어 선을 잇기 시작했다. 작업 후반기에 진행된 사진책 배부 과정이 그 예시가 될 것이다. 작가는 작업 후반부에 도록을 제작하면서 칠백 부 가량의 배포용 사진책을 따로 제작했다. 그리고 이를 다리로 들고 갔다. 자신이 촬영했던 다리 밑이나 위에 테이블과 간판을 설치하고 다리를 오가는 시민들에게 책을 배부했다. 퇴근길, 산책길의 시민들은 익숙한 다리 위에서 마주한 낯선 이에게 사진책을 선물 받았다. 사진책은 이 문장으로 시작된다. ‘여러분에게 다리는 어떤 존재인가요?’

[그림6] ‘다리를 건너는 시간’ 사진책 배부 현장

[그림7] ‘다리를 건너는 시간’ 사진책을 가져가는 시민

[그림8] ‘다리를 건너는 시간’ 사진책을 감상하는 시민
책을 받은 시민들은 작가에게 말을 걸거나,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세상살이에 대한 한탄과 현 정치권을 향한 불만, 신앙고백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짧으면 삼십 초 남짓, 길게는 십분 남짓 이어졌다. 작가는 판단하는 대신 그저 귀 기울여 들어주었다고 한다. 기나긴 삶에 비하면 순간에 가까울 만큼 짧은 만남이었지만 생면부지의 인간에게 솔직한 이야기를 털어놓는 순간 다리가 지어진다. 사람들 사이에 다리가 놓인다.
기실 작가가 현장으로 나가 낯선 이들과 교류한 경험 자체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작가는 20대 초반에 대학교 졸업 작품 <집 나간 이미지 (2012)>에서 자신의 이미지를 사용한 유저들과 대화를 시도했다. 당시 작가는 자기의 작품이 인터넷에 공개된 후 전세계의 네트워크에서 엉뚱한 맥락으로, 자신의 사진들이 사용되는 모습을 발견한다. 이때 작가는 이미지의 원저작자인 만큼 사진 이미지의 저작권이나 인터넷 속 빈곤한 이미지에 천착할 수도 있었겠지만 작가의 관심사는 그것이 아니었다. 그의 관심사는 사진이 재가공되고 배포되는 해프닝 자체와 그 유저들이었다. 작가는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보내 이 사진을 어떤 이유로 사용했는지 질문했고, 유저들은 가지각색의 답을 내놓았다.
기실 작가가 현장으로 나가 낯선 이들과 교류한 경험 자체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작가는 20대 초반에 대학교 졸업 작품 <집 나간 이미지 (2012)>에서 자신의 이미지를 사용한 유저들과 대화를 시도했다. 당시 작가는 자기의 작품이 인터넷에 공개된 후 전세계의 네트워크에서 엉뚱한 맥락으로, 자신의 사진들이 사용되는 모습을 발견한다. 이때 작가는 이미지의 원저작자인 만큼 사진 이미지의 저작권이나 인터넷 속 빈곤한 이미지에 천착할 수도 있었겠지만 작가의 관심사는 그것이 아니었다. 그의 관심사는 사진이 재가공되고 배포되는 해프닝 자체와 그 유저들이었다. 작가는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보내 이 사진을 어떤 이유로 사용했는지 질문했고, 유저들은 가지각색의 답을 내놓았다.


[그림9] 집 나간 이미지, 이진영, 2011 (1)
[그림10] 집 나간 이미지, 이진영, 2011 (2)
돌이켜보면 이진영은 늘 사람들을 마주하고 그들(과)의 이야기를 수집하려 했으며 그것으로 자신의 작업 세계를 채워왔다. 작가가 출간한 사진책 <유난히 많은 삶을 스쳤다(2018)>, <어슴푸레(2019)>는 소방서 공익근무 시절 마주했던 수많은 사건과 사람의 이야기를 엮은 것이었다. 앞서 설명한 <씨앗 심기> 역시 그러하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많은 만남이 단절되었을 때 작가가 온라인 채팅으로 교류했던 사람들과의 이야기가 담겨있고, 요양원 면회에서 마주한 할아버지, 할아버지와 자신 사이에 놓인 아크릴 방호벽 등이 기록되어 있다. 작거나 크고, 밝거나 어둡고, 우습거나 슬프고, 가볍거나 진중한 순간들. 이진영이 심은 씨앗들. 연결을 기다리는 점들.
이제 작가는 점을 잇기 시작한 것 같다. 자유분방하게 흩어진 점들을 꼼꼼하게 연결하려는 듯 보인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작가 자체가 다리가 되었다는 것이다. 현장에서 이웃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그들이 작가의 예술세계로 건너오는 다리가 놓였다. 무수하게 쌓아왔던 이야기들이 터져 나와 관객들과 연결되는 시간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다리를 건너는 시간>은 작가에게 전환점이 되었다.
이제 작가는 점을 잇기 시작한 것 같다. 자유분방하게 흩어진 점들을 꼼꼼하게 연결하려는 듯 보인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작가 자체가 다리가 되었다는 것이다. 현장에서 이웃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그들이 작가의 예술세계로 건너오는 다리가 놓였다. 무수하게 쌓아왔던 이야기들이 터져 나와 관객들과 연결되는 시간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다리를 건너는 시간>은 작가에게 전환점이 되었다.
3장. 나가며
작업 아이디어를 토의했던 지난 겨울로부터 일 년이 흘렀고 <다리를 건너는 시간>은 종료되었다. 필자에게 <다리를 건너는 시간>은 작가 개인프로젝트의 기획자로 참여하며 작가와 1대 1의 합을 맞춘 첫 번째 계기였기에 더욱 의미가 깊었다. 앞서 말했듯 필자의 프로젝트 작업 및 운영 방식과 이진영 작가 방식은 매우 달랐다. 그의 방법론과 자유분방한 개성을 (편견 없이) 알아가는 과정도 제법 오래 걸렸던 것 같다. 정확히 하나로 정리되지 않는 작업을 이어왔고 그것이 제 개성이나 마찬가지인 작가에게, 조금 더 만듦새를 정돈하자고 설득한 적도 많았던 것 같다. 작업이 종료되고 사진책 배부도 완료된 지금 그 시간을 돌아보니 새삼스럽다. 예측불허의 작업 과정을 거치긴 하였으나, 작가의 성실함과 기지가 이 프로젝트를 단단히 받치고 있으니 말이다. 새로운 시도로 가득했던 작업을 무사히 완주한 작가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또한 작가에게 협조했던 성남 시민들에게 감사 인사를 보내고 싶다. 도시에서 낯선 사람이 책을 나누어주는 모습은 경계심을 일으킬 만한데도, 선뜻 책을 받고 감상을 나누며 작가와 소통한 시민들이 있어 프로젝트가 풍성해졌다. 그들은 기꺼이 다리가 되어주었고, 서로의 세계로 넘나들 수 있었다.
자, 이제 작가의 세계는 점(씨앗)에서 선(다리)으로 확장되었다. 다음은 면이다. 다리를 건너는 시간은 그를 분명 새로운 장場으로 인도했을 것이다. 다음의 이야기는 어떤 모습으로 펼쳐질까.
어떤 세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작업 아이디어를 토의했던 지난 겨울로부터 일 년이 흘렀고 <다리를 건너는 시간>은 종료되었다. 필자에게 <다리를 건너는 시간>은 작가 개인프로젝트의 기획자로 참여하며 작가와 1대 1의 합을 맞춘 첫 번째 계기였기에 더욱 의미가 깊었다. 앞서 말했듯 필자의 프로젝트 작업 및 운영 방식과 이진영 작가 방식은 매우 달랐다. 그의 방법론과 자유분방한 개성을 (편견 없이) 알아가는 과정도 제법 오래 걸렸던 것 같다. 정확히 하나로 정리되지 않는 작업을 이어왔고 그것이 제 개성이나 마찬가지인 작가에게, 조금 더 만듦새를 정돈하자고 설득한 적도 많았던 것 같다. 작업이 종료되고 사진책 배부도 완료된 지금 그 시간을 돌아보니 새삼스럽다. 예측불허의 작업 과정을 거치긴 하였으나, 작가의 성실함과 기지가 이 프로젝트를 단단히 받치고 있으니 말이다. 새로운 시도로 가득했던 작업을 무사히 완주한 작가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또한 작가에게 협조했던 성남 시민들에게 감사 인사를 보내고 싶다. 도시에서 낯선 사람이 책을 나누어주는 모습은 경계심을 일으킬 만한데도, 선뜻 책을 받고 감상을 나누며 작가와 소통한 시민들이 있어 프로젝트가 풍성해졌다. 그들은 기꺼이 다리가 되어주었고, 서로의 세계로 넘나들 수 있었다.
자, 이제 작가의 세계는 점(씨앗)에서 선(다리)으로 확장되었다. 다음은 면이다. 다리를 건너는 시간은 그를 분명 새로운 장場으로 인도했을 것이다. 다음의 이야기는 어떤 모습으로 펼쳐질까.
어떤 세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